부활 제 6 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18,1-8;요한 16,16-20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 “시인 예수” 라는 작품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 시인이게 하는 시인. /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그 기다림의 아들은, 오늘 그가 하고자 하려는 일을 마치 수수께끼처럼 알려줍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분의 이런 말씀을 들으며 제자들이 의문을 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가끔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감히 발표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준비하는 때가 있곤 합니다. 그러한 날이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기에 발표할 때를 기다리고 성취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처럼, 오늘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준비하시는 모습을 뵈오면서, 이 아침을 시작하고 앞으로 벌어지게 될 시간 속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마련해 주시려 합니다. 다만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우리의 미진한 감각으로 인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애태우지 만을 않기를 바랄 뿐인데요.
우리 각각에게 다가오시고 또 우리 모두를 위해 다가오시는 그분의 섭리와 그분의 뜻을 바라보면서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라는 말씀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요 구원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보통 바라는 조급함 속에서 그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준비하는 기다림 속에서 구원을 이루신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시고, 오늘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드리려고 하는가 살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주님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