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토요일. 사도 13,44-52; 요한 14,7-14
오랫동안 젊은이들이 입회하지 않아서 몇몇 노인 수사님만 남게 된 어느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수도원을 폐쇄해야만 하는 위기 앞에서 고심 끝에 산 속에 사는 한 은수자를 찾아가 고견을 듣기로 하고 원장이 떠납니다. 먼 길을 떠난 원장은 드디어 은수자를 만나,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예전처럼 수도원에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통찰력 넘치는 조언을 기대한 원장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저 “여러분 가운데 메시아가 계십니다.” 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 원장은 희망을 안고 기다릴 다른 수사님들을 생각하니 더욱 더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원장은 수도자들을 불러놓고 은수자가 해준 말을 전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그 말을 듣고 힘이 빠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방에서 모두들 은수자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메시아가 있다고? 그러면 식당에서 수프를 소리 내서 먹던 수사였나? 아니면 성가를 못 부르던 그 수사였나? 아니면 꼭 늦게 일어나 미사 시간에 늦는 저 수사인가?’ 그런 생각들이 하나씩 들면서 나, 너, 우리 중에 누군가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그 수도원은 사랑 넘친 공동체가 되어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예수님을 그토록 보고 살았던 제자들이지만 마치 하느님을 본 적이 없던 것처럼 제자들은 행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토록 오랫동안 믿어왔으면서도 마치 신앙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던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서로를 얼마나 많이들 미워하고 있습니까?
1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삼았다.” 서로는 그렇게 비춰주면서 나에게 없는 면을 비춰주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빛을 받아갈 때 서로에게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