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월요일

2011. 5. 23. 오전 12: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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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5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14,5-18;요한 14,21-26

이번 주간은 매일미사 책에도 잘 나와 있듯이 교육주간입니다. 우린 참된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수녀회에도 이런 이름의 수녀회가 있잖습니까?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라고요. 그런데 과연 그분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셨기에 우린 그 분을 ‘스승 예수’라고 할까요? 페이스 북, 미니홈피, 카카오톡, 블로그 등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내가 세상에 살아있음을 보이고 싶어합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 내부 안에는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와 반대되는 듯한 삶을 사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묻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참 난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제자들인 자기들이 한 자리 잡고 싶어했는데 문제는 선생님이 꿈쩍하질 않으시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계명을 통해 자기를 헤아리는 삶을 사셨기에 세상의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당신의 길을 가시는데요. 그럼 그 사랑의 계명이란 무엇입니까? 어쩌면 가장 단순한 법이라 하겠는데요. 복잡다단한 유대의 율법을 예수님은 그저 ‘사랑하라’ 한 마디로 환원시키고 계시니 말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무언가 자꾸 덧붙여져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과 더 멀어지는 삶이 되고 마는데요. 1독서에서 참 약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적을 보게되자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신으로 섬기려 합니다. 이제껏 모셔왔던 신이란 그저 자신을 찬양하게 만드는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방식은 다릅니다. 사랑의 계명이 신과 사람이 어떻게 통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데요. 요한복음 10장 17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즉 초연히 세속에 잘 참여하는 사람은 하늘이 주는 명에 순종하며 세상의 수동성과 능동성을 추구합니다. 특별하게 드러내려 애 쓸 필요도 없습니다. 드러날 만하면, 싫더라도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이 알아줘야 살 수 있다고 믿는 우리가, 진정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젠 그 방법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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