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 장학회 월례미사..
요즘은 참으로 비쥬얼 시대입니다. 잘 생기고 이쁜 사람이 취직도 잘하는 것 같고, 대우도 잘 받고, 그런 사람을 보면서 무언가 기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부님도 잘생긴 신부님이 본당에 부임해오면 그야말로 와~ 하면서 주목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이끌었던 유명한 사람들 정치가, 사업가를 보면 잘 생긴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을 보곤 합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생겼기에 그런 큰 일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면서 문득 추기경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보통 젊을 때 사진은 잘 생긴 분들도 계시던데 김수환 추기경님은 저처럼 그저 남자답게 생기셨습니다. 인중이 기신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하게 생긴 모습을 보면서 당신의 호가 떠올랐습니다. 옹기 말입니다. 옹기를 지으신 뜻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지만 도덕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퀴살이 비어 있어야 수레로서 효용이 있고,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 때 가운데를 비게 해야 그릇으로 쓸모가 있고, 집을 짓고 방을 만들 때 방 안이 비어 있어야 방으로서 쓸모가 있다.” 고요. 비어있어야 참된 쓸모가 있다는 말을 어떻게 여기십니까? 그래서 그런 지 시장의 그릇상가에 가면, 큰 그릇이 작은 그릇을 포개어 놓고 전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꽉 차 있으면 다른 것을 담아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모습을 아셨기에 당신 자신을 ‘바보야’ 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똑똑하고 높아지려고만 하는 세상에, 당신은 오히려 반대로 낮아짐을 선택하셨고, 둔탁한 옹기, 바보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착하다는 표현,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씀이 당신의 이런 정신과 맞갖음을 봅니다. 무던한 모습, 뭔가를 드러내기보다는 그저 할 일을 다 하는 참된 모습 말입니다.
어제는 성소주일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날엔 교리에 따라 결혼성소, 수도성소를 무 자르듯 이야기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이제 우리 삶을 비춰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 말에 ‘선행은 무철적’ 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선행은 바퀴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착한 일을 하되 자신이 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도 그러셨잖습니까? 병자를 고쳐주시고서는 ‘내가 널 고쳐주었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양을 사랑하는 참된 목자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양을 치료하거나 구해내어도 그 양에게 생색내거나 떠벌리지 않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우린 추기경님을 떠올리며 매 달 모이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시고 이제 이런 어른이 안 계신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사실 추기경님은 이것을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할 만큼 하고 가셨기에, 그 뒤를 이을 수 있도록 남아있는 우리 자신이 큰 어른이 되어주길 말입니다. 더 이상 남을 향해 큰 사랑을 베푸는 어른이 되라고 강요하지 말고, 나 자신부터 집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참된 어른이 되어주길 말입니다. 그게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아직 내가 세상에서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세상에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의 신앙을 믿고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을 참으로 잘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나름의 한계에 갇힌 사랑에 만족하고, 내 방식대로 사랑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린 사랑의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참다운 사랑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추기경님 못지않는 사랑을 하도록 나의 주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상의 시간이 지금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