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기원미사. 신명기 30,1-5;에페소서 4,29-5,2;마태오 18,19-22
예전 저의 어머니가 고등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우리나라는 언제 통일이 될까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독일이 먼저 통일되어야 할걸?” 정말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독일이 통일된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시간을 서로 6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으면서, 과연 어떤 방법으로 통일을 맞이해야 할까요?
미사 중간에 우린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라면서,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기도 잘 하다가 순간 뜬금없이 왜 인사를 하겠습니까? 미사 시작하면서 가슴을 치며 고백의 기도를 하고, 참회의 자비송을 하였더라도 계속 누군가가 밉다면, 이제 그 인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용서하고 화해하는 속에서 성체를 참되게 모시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쉽사리 화해의 손이 뻗쳐지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굴곡의 시간도 길었고, 패인 상처도 깊습니다. 게다가 자존심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라며 나름 최대치의 용서 횟수를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생각, 그 이상을 말씀하시는데요. 탈출기를 보면 모세가 주님의 소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주겠다.” 하셨지만, 계속 모세는 뒷걸음치며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화를 내시며 형 아론을 붙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화를 내셨다는 것은 인간이 생각한 체념이나 포기도, 하느님 앞에서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북한에 대해 체념과 포기를 하신 분들, 꽤 많이 계실 것입니다. “걔들은 안 돼” 하면서요. 하지만 주님은 베드로에게 끝없는 초월적인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안 되고 모자라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인도하는 사랑의 단체가 지금도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알아주고 달래주며, 등 두드려 주는 하느님이 계셨기에 모세가 일어서서 나설 수 있었듯이, 우리도 그분의 힘을 받아 좁은 폭에 갇힌 나의 사랑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사랑의 힘이 커진 여러분이 될 때 서로 가졌던 상처와 아픔은 서로의 신뢰와 희망 속에서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