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 주간 수요일. 고린토2서 9,6-11;마태오 6,1-18
살면서 우린 남한테 내보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뭔가 자랑하고 싶어하고, 드세우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남에게 부러운 소리라도 듣고 싶어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러면 기분이 으쓱하고 좋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말은, 좀 깊이 들어가 본다면, 내 안에 뭔가가 허하다는, 뭔가가 채워지지 않아 부족하기에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 안의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에, 남에게 좋은 소리를 자꾸만 듣고 싶어하는 것인데요.
십자가의 성 요한이 지은 ‘어둔 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교회 안에서의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책이 읽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만나야 할 그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어둔 밤 1권 12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욕망과 맛의 신발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니 그런 마음가짐이라야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요. 모세가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 때 신발을 벗고 나아갔듯이 우리도 지금까지 끌어 모은 온갖 지식을 내버려야만 참된 것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실 그동안 배우고 만난 것을 다 버리라고 한다면 여기에 긍정할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깝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버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기주의와 겉치레의 욕망을 벗어나는 일이며 그렇게 정화의 과정을 거칠 때, 나 자신의 바닥을 보게 되면서 하느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 어떻습니까? ‘자선을 베풀 때 칭찬을 받으려고 스스로 나팔을 불고, 기도할 때는 드러내 보이고, 단식할 때는 일부러 침통한 표정을 짓고’ 말이지요.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는 말은 더 이상 하느님께서 주실 것이 없다는 뜻이 되겠지요.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사람은 더 이상 하느님께 축복을 받기를 기다리지도 그리워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뭔가 갈증을 느꼈기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럼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참으로 비워낼 때 진정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보일 것이고, 그것을 당신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