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간 목요일

2011. 6. 23. 오후 8: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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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2주간 목요일. 창세기 16,1-16;마태오 7,21-29

예전에 ‘백거이’라는 사람이 쓴 낙천(樂天)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마다 더위를 피하려고 미친듯이 날뛰는데.. 홀로 선사가 있어 방을 나오지 않네.. 선방이라 해서 더위가 미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다만 마음을 고요히 하매 몸이 절로 시원하구나.. 라고요.. 밖에서 문제해결을 찾으려 할 때 오히려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말이 될 텐데요.. 오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런 짓을 범합니다. 하느님께서 별들의 수효만큼이나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를 기다리지 못한 사라는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보내었고 아브라함도 말없이 여기에 응합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 늘 그렇듯이 여종 하가르가 임신을 하게 되자 주인을 업신여겼고 이에 분한 사라가 남편에게 따져보지만 아브라함도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당신 좋을대로 하구려.” 하고 발뺌을 하는데요. 만약 좀 더 믿음을 갖고 기다렸다면 이런 분란도 없었을 것을 우린 많은 경우에서 서두르는 경우를 만납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고요. 뭔가를 믿는다는 자세는, 매끄럽지만은 아닌 좀 수더분하고 좀 느린 태도로 진득한, 그 무언가가 수반되어야 할 텐데요. 하지만 우린 삶에 있어서 어떻게든 빨리 결실을 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삽니다. 그러다가 확인하는 것은 늘 후회뿐이지요. 역시나 하가르의 아들 이스마엘은 나중에 이사악이 태어난 후 두 모자는 아브라함 집에서 쫓겨납니다. 정실(正室)의 아들이 아니라면 늘 그래왔던 삶이지요. 하지만 주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창세기 21장 18절을 보면 울며 떠나야 하는 하가르를 향해 이런 약속을 해주시니까요.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고요. 정말로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오늘날 이슬람교가 되어 엄청난 세력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내치지 않는 당신의 돌봄의 근간은, 나를 이뤄주고 있는 내 안의 믿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사물을 비춰주지 못합니다. 고요한 물이라야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시작되어야 합니다. 기다림 속에서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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