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화요일. 탈출기 14,21-15,1ㄴ;마태오 12,46-50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음미하고 내가 알고 있던, 내가 행하고 있던 사랑에서 벗어나서 그분의 사랑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을 보노라면 행하고 있다는 사랑이 초월적이지 못하고, 그저 현실의 한계에 갇혀있는 분들을 많이 보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자기 가족에게만 해당된다던가, 또는 나의 범위 내에서만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현실적인 사람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보이는 내 주변의 사람부터 챙겨야겠지요. 그런데 그렇게만 하다보면 내가 사랑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욕심에 갇힌 폐쇄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들거나 중독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곤 하는데요. 즉 사랑을 하더라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꽤나 차가운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십니다. 그럼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의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뜻이라는 것,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을 주님의 저울에 한 번 달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하느님의 사랑에 내 사랑을 달아보면서 그 사랑이 함량미달인지를 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주의사항은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한 쪽면만 가지고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복음구절 몇 개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축소시키는 꼴이 되니까 말입니다. 성경의 내용은 생각보다 짧게 쓰여져 있습니다. 페이지 상 성경책이 두꺼워 보입니다만 실은 요한복음사가가 말한대로 복음 마지막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고 되어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언어로 다 표현 못할,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헤아려보시면서 나의 사랑을 체 쳐보십시오. 그러면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