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목요일. 탈출기 19,1-20; 마태오 13,10-17
저번 2주간 저는 프랑스 리옹의 시골인 리모네에서 21개국 신부 45명과 ‘교리교육에 관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모인 나라 대다수는 불어를 쓰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어를 쓰는 스페인, 남미지역 그리고 아시아로는 한국과 베트남, 중국 이렇게 모였는데요. 여러 나라가 모였다지만 교회의 사정은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각자가 가진 인격의 침해를 받는 것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인격을 존엄 받고자, 좋은 메이커의 옷과 전자기기 그리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덕행을 쌓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사랑과 포르노를 혼동하고 있었고, 침묵의 의미를 모르기에 깊이 잠심할 줄 모르며, 물질이 주는 환상의 세계에 갇혀있으면서도 그것이 자유로운 삶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미 천주교 국가인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를 강조하였기에, 현재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리시간이 없으며, 스페인은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었기에 신자들도 교회가 그 세태에 동참해주길 바라고 있고, 남미 지역은 사적계시에 의한 대중신심의 난립으로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그럼 이제 겨우 200년의 교회역사를 가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고요. 신비란 원래 쉽게 찾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비를 이미 체험하여 우리나라에게도 복음을 전하러 왔던 나라들이 이제는 쇠약한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세상의 세속화로 젊은이이 하느님 보다는 세상에 더 열광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한편 교회가 매력을 잃게 된 원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교회가 교회만의 방식을 잃고 세상의 것을 따라가려 세상의 방식을 택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어느 성당의 일화입니다. 젊은이들을 모이게 하려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성가를 위주로 미사를 했답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교회가 뭐 이래?’ 하면서 나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교회만의 그 무언가를 원했던 모양입니다. 청소년의 입맛에 맞게 한다고 세상의 것을 쉽게 택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도 경건함이 뭔지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당신이 주신 행복이 뭔지를 압니다. 그 속에서 가리워진 나의 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주님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