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수요일

2011. 7. 20. 오전 6: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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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6주간 수요일. 탈출기 16,1-15; 마태오 13,1-9

얼마 전 본당의 여자청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요사이 연애를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그 심경이 어떤 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요새 남친 생겼다매? 좋니?” 하니까 그 청년은 “아뇨.. 요새 매일 울어요.” 하고 답했습니다. “아니 왜?” 하니까. “제가 기대하는 것을 남친이 안 들어줘서요.” 라고 답했습니다. 사랑의 기대치를 스스로 올려놓고 들어주지 않으니까 불평을 터뜨리면서 자신과 남자친구를 들볶고 있는 경우를 보았는데요. 이렇게 계속 간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랑이 쉽지는 않겠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광야로 끌고 왔소?” 하면서요. 하느님과 지낸 고마왔던 많은 시간은 어느새 다 잊혀지고 불만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청년의 경우나,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를 우리 사이에서 많이 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뭔가를 해줘도 계속 요구를 하거나 불평을 터뜨리는 있는 모습입니다. 복음에 보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는 똑같은 씨인데, 어떤 땅은 열매를 맺고 어떤 땅은 맺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처사도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만나지만 계속 불평을 터뜨리고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이 결핍된 것은 없을까 바라봐야 하는데요. 100명이 잔칫상에서 갈비탕을 먹었지만, 나 혼자 탈이 났다면 소화를 못한 내가 문제이듯이, 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시각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를 보지 못한다면 그저 욕심에 사로잡힌 안타까운 나 자신만을 들여다 볼 텐데요.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주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즉 사랑이지요. 어린아이가 달디 단 사탕을 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씁니다. 그것을 계속 먹을 경우 치아가 상한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는 혼을 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만 먹으라며 내어주는 것을 보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도 그 사랑이 무엇인가 헤아려 보면서 한편으로 내가 불평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아닐까 봐야 하겠습니다. 그 불평어린 욕심이 나를 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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