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월요일

2011. 7. 17. 오후 8: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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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간 월요일. 탈출기 14,5-18;마태오 12,38-42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화가는 늙으면 안된다” 라고요. 만화가도 사람인데 어떻게 안 늙겠습니까? 하지만 만화를 보다보면 그 말이 수긍이 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장면에서 갑자기 위트를 보여준다거나 또는 엉뚱한 말로 폭소를 만들게 하는 것을 보면, 비록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감각적인 부분을 예리하게 지녀야,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긴데요. 이런 모습은 개그맨들에게도 비롯됩니다. 한창 시절에는 엄청나게 웃음을 줬는데 몇 십년 지나 TV에 나오지만, 별로 재미없고 예전 것만 우려먹는 경우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도 살아있는 감각적인 부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서에 보면 이집트인들을 향해 열 가지 재앙을 보이신 하느님을 능력을 만나고도 당장 이집트 군사가 뒤따르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주님의 능력을 보았어도 위기상황에 닥치게 되자 믿지 못하는 예전 버릇이 또 도졌다면, 기적도 필요가 없는데요. 그래서 복음에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라는 말에 기적을 보이시기보다 당신 자체가 표징이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감각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봉착하게 되는데요. 알렐루야에도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고요.

 혹시 나무나 식물잎이 마르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디부터 마릅니까? 바로 끝부터 마릅니다. 사람도 손끝, 발끝부터 주름이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살아있던 감각의 기능도 바로 가장 세밀히 느낄 수 있는 끝부분에서부터 늙어가고, 정신적인 부분도 그렇습니다. 평소 내가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어디였나를 염두하면서 살지 못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신을 저버리는 경우를 만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상처속에서, 자기 불신과 열등감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보려고만 든다면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미 기적을 만났어도 온갖 핑계를 대며 ‘내게 이러실 수 있냐’면서 부르짖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제일 처음에 기억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때 만났던 힘을 되새겨 보십시오. 그 안은 주님을 신뢰하는 감각의 제일 미세한 첫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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