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3주간 목요일. 창세 22, 1-19. 마태 9.1-8
저도 경험을 했습니다만, 신학교 입학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복수전공이나 복수지원을 못하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러 군데에 지원원서를 넣고 발표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젊은 나이에 다른 공부도 하고 싶겠지요. 하지만 신학교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야 하기에, 다른 데에 구멍을 파놓고 ‘여기 아니면 저기’ 하는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참다운 자세가 아니라고 성소자 모임 때부터 이야기 합니다. 즉 할 수 있어도 일부러 안하는 것,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수 있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거는 하나를 위해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오늘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내놓는 모습이 나옵니다. 모든 부모들의 전 재산이 자녀이듯이 그에게도 늦둥이 이사악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아브라함이라고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대신 다른 동물을 바쳐놓고 하느님의 눈을 가리고 싶다는 유혹도 있었겠지만, 그의 충성스러움이 더 많은 것을 얻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내놓았기에, 더 많은 것을 얻었던 사람들을 성경에서나 체험을 한 여러 사람들을 통해 듣곤 합니다. ‘그렇게 바치고 나면 당장 내일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하는 걱정이 앞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걱정마저도 당신께 맡겼을 때, 더 많은 것을 채워 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보면서, ‘난 오늘도 무엇을 움켜쥐고 놓지를 못하고 있나?’ 를 보게 해줍니다.
내가 가진 것이 실상 큰 것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닌데.. 그것이 날 지켜줄 것만 같아 오늘도 쥐고만 있습니다. 평화신문에 보니 어제 예수회에서 서품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젊은 그들이라고 왜 욕심이 없겠습니까? 모든 것이 풍요롭다고 여기는 이 때에 모든 것을 바쳤기에 모든 것을 얻는 성직자들, 수도자들이 잘 탄생하길 기도하면서, 우리 자신도 그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