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타 기념일

2011. 7. 29. 오전 8:31:11

글자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 1서 4,7-16;요한 11,19-27

딸들이 어릴 때는 잘 모르다가 자신이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을 때부터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비록 아이가 뱃속에 있기에 보이진 않지만 자신이 보고, 듣고, 먹고, 생각하고, 느끼고 하는 것들이 아이와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홀로 뛰어놀면서 놀이터나 학교에 가 있을 때에도 비록 멀리 있기에 보이진 않더라도 그 아이와 항상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이런 보이는 가시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통함을, 우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부터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텐데요. 우리의 참된 부모님이시니까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누군가를 고백하고 그를 인정하고 그리워하고 머무르려 하다보면 참다움도 속에서 피어납니다. 그러면서 더 가까워지는데요.

오늘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입니다. 보통 다른 구절에는 동생 마리아와 비교대상이 되면서, 당신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그저 활동하는 사람의 대명사격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오늘 그녀는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녀가 주님을 참된 메시아라고,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씀처럼 마르타는 아마도 예수님을 뵈오면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지 알았던 모양입니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다보면 그의 생각하는 이면의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사랑만 하다보면 그의 행동은 납득이 가지 않기에, 그 때부터 서로의 관계는 단절이 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아직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이미 사랑할 준비가 되었기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이를 기뻐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내가 아는 사랑의 폭을 넓혀갈 때 주님의 뜻하심의 참된 차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미 누구의 엄마라면 말이죠.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