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청소년 미사

2011. 8. 7. 오전 12: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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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일 청소년 미사

뭐 하나 물어볼께요.. 여러분 자신이 살면서 ‘참 나는 실수투성이야.. 나는 실수를 참 많이 저지르는 것 같애. 시험칠 때도 그렇고, 남들에게 무언가 보여줄 때도 그렇고..’ 하는 친구들 있어요? 그런데 그런 실수와 문제를 저지르는 자기 자신을 혹시 미워합니까? 다른 친구와 비교하면서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지?’ 하면서 말예요..

  옛날 일본시인들 중에 하이쿠 시인이란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이쿠는 아주 짧은 시인데 일본어 원문을 보면 딱 1줄짜리 시를 짓는 이들이었어요. 그런데 일본의 중세시절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 다니던 방랑시인들이었기 때문에, 잠이 오면 빈집에서 자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구걸하면서 다닌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이들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관찰력이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는데 이런 시예요. “홍시여~ 이것만은 잊지 말게..너도 젊었을 적에는 무척 떫었지..” 이게 다예요. 홍시가 홍시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물리적인 시간만 필요하지는 않았겠지요. 수 많은 계절을 거쳤기 때문에 달디 단 감맛이 나올 수 있었는데요.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10대 나이라면 실수는 당연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 계속 실수를 연발해야만 내가 어디에 취약한지 무엇에 강한 지를 알 수 있는데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감추려고만 듭니다. 여러분이 잘 보시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10대 아이돌, 아역 탤런트들의 잘하는 모습만 보니까 굉장히 부러워 할 수 있지만 실은 그 밑에는 백조처럼 물 밑에서 안 보여주는 발놀림이 있지요. 다만 안 보여줄 뿐이지요. 그런데 나는 내가 저지르는 실수는 스스로 보고 있으니까... 그걸 못 견뎌하는데요.

오늘 그런 사람 하나가 나오지요. 베드로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예요?. 최초의 교황님이에요. 예수님의 수제자예요. 어부 출신이지만 나중에 많은 사람들 앞에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선포한 사람이에요.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따랐고요. 그런데 오늘 복음은 어때요? 완전 실수투성이의 약자입니다. 예수님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너라... 하셨지만 어때요? 거센 바람을 보고 그만 두려워서 물에 빠집니다. 그러면서 소리지르지요.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뭐 한 마디로 베드로가 이 복음을 보았다면 창피하다고 그거 쓴 마태오보고 삭제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을꺼예요. 그런데 놔둬요.. 그리고 그 실수를 모두가 읽게끔 놔둡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그랬듯이 우리 모두는 그런 실수를 하면서 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란 것이죠. 실수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잘하기만 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아세요? 어릴 때 천재라고, 수재라고 일컬어진 사람 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천재로 남아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알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자기 머리를 믿으니까, 자만감에 노력도 안 하고 사는 거예요. 당연히 그 밑에서 노력하는 사람이 치고 올라오지요. 그는 처음에는 뛰어났지만 밀려날 수 밖에 없어요. 베드로도 오늘 외에도 엄청난 잘못을 저지릅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때요? 만약에 여러분 후배가 여러분 보고 생까고 씩~ 지나간다면 화 나지요?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자기가 살라고 그런 짓을 저지릅니다. 그 땐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요즘 들어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들보다, 나를 들들 볶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부모님도 그렇고 학교선생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래요. 또 나 자신도 나를 못 살게 볶아댑니다. 이럴수록 우린 힘들어지고 외로워지고, 우울해지지요. 다시 일어나려는 힘도 잃어버리게 되고요.

우린 이제 이걸 알아야 합니다. 첫째. 우린 실수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둘째로 세상 사람들은 실수하는 나를 싫어하지만 그런 나를 받아주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 셋째, 우린 다들 경우는 다르지만 실수하고 살기 때문에, 서로의 실수도 받아들여주고 놀리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 때,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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