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수요일. 민수기 13,1-14,35;마태오 15,21-28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솝우화에 보면 ‘여우와 포도’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송이를 보고 군침을 흘립니다. 그런데 자기 키보다 높이 달려 있습니다. 깡총거리면 뛰어보지만 안되자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기지요. ‘저 포도는 실꺼야..’ 어쩌면 우리의 바램을 빌어보지만 당장 안 된다고 해서 여우의 모습처럼 사는 것은 아니십니까?
오늘 독서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앞에 당도합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입니다. 성지순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땅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황량하기 이를 데 없기에 선뜻 왜 거기가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데에 비하면 그 땅은 비옥한 곳입니다. 그런 좋은 땅이었기에 약속의 땅은 아무도 안 사는 땅이 아니라, 이미 힘센 사람들이 거창한 성채를 이루면 터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칼렙이 백성을 진정시키며 말합니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고요. 하지만 꼭 부정적인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보다 강한 사람이다...그 땅은 주민을 삼켜버리는 땅이다... 모두 키 큰 사람들 뿐이기에 우리가 메뚜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등으로 소문을 퍼뜨립니다. 하지만 이런 투덜거림이 무엇을 낳았습니까? 사십 년을, 한 세대가 넘어서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잖습니까? 하지만 복음의 여인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매정한 한 마디에도 그녀는 더 매달렸습니다. 주님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처럼 들리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씀조차 자신을 비우는 자세로 더 당신께 매달렸기에 참된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에 있을 때에도 보면 중간에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이들 중에 그런 경우를 보았는데요. 왜 그런가 보니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기 힘들기에 견디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루가복음 10장 2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여우처럼 판단하며 살 것이 아니라 복음의 여인처럼 무던한 믿음으로 살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