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금요일. 여호수아 24,1-13;마태오 19,3-12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 성당은 혼배가 참 많은 곳입니다. 뉴스에는 싱글족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저는 혼배교리에 주례까지 참 많이 해왔습니다. 게다가 주례예약 부탁이 지금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데요. 제 인생 중 이렇게 비싼 인생을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오래갈런지 모르겠습니다. 혼배주례를 부탁하러 오는 친구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남자중에, 그 여자중에 이 사람이어야 하냐?’ 하고요. 그러면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여성자매들은 언어적인 능력이 뛰어나기에 조곤조곤 잘 풀어서 이야기 합니다만 남자들은 그저 ‘이쁘니까요, 나한테 잘해주니까요’ 라고 말해서 면담 후에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그게 다야?” 하면서요~
오늘 복음은 혼인 미사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복음입니다. 바리사이들의 간교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아마 바리사이들이 대한민국의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남편이 아내들에 의해 버림받는 사실을 알고 놀랄텐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슨 이유로 같이 살고 계십니까? 영국 시인 브라우닝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진 여러 자질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 임을 말해줍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난 저 여자를 사랑해
미소 때문에 얼굴 때문에
다정한 말씨 때문에
나와 어울리는 사고방식 때문에
그리고 어느 날 정말 좋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마셔요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님이여
어차피 그 자체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어쩌면 그대 자신이 바뀔지도 모르니까요
라는 시였는데요. 진실한 사랑은 그저 다정한 말씨, 좋은 느낌에 멈추지 않습니다. 서로를 위해 나 자신을 주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청년들이 캠프를 떠납니다. 이 캠프는 제가 알기로는 대한민국 교회역사상 처음하는 캠프입니다. 사랑을 가르쳐주고, 그저 이상형에 사로잡혔던 사랑관에서 벗어나 폭넓은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뭐뭐 때문에 시작했던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사랑으로 바뀔 것이니 말입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