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화요일. 데살로니카1서 2,1-8;마태오 23,23-26
며칠 전 김 베드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가르치고 있는 예비자들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본당에 와서 만든 것 중에 하나가 예상시험문제였습니다. 찰고 때 예비자들이 잘 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요. 그 문항 중에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라는 문항에 답이 ‘우리의 죄 때문에 못 박히셨고 그 죽음으로 하느님과 다시 화해하게 되었다.’ 라는 답이 어렵다고 토로했답니다. 저나 여러분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왜 예비자들은 이것을 어려워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는데요. 얼마 전 차승원 공효진이 나온 ‘최고의 사랑’ 이란 드라마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럼 최고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사랑은 바로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아직 예비자분들은 사랑의 그런 큰 단계까지는 보지 못했는 듯 싶었는데요. 그런 사랑을 해야만 당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찾지 않았습니다.” 라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위해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사랑을 보여주셨으니 우리도 서로를 위해 바치는 모습을 가지자고 독려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도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일 중요한 하느님께 충실하려 하기보다는 그보다 덜 중요한 남의 눈치에 더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저 자기혼자 잘 살면서 편하면 되는데 괜히 남의 눈을 중시하다보니 좋은 차, 좋은 물건, 큰 집에 몰두하면서 이런 문제도 터졌습니다. 우리 동네에 수해났던 현장을 보니 어려운 반지하에 살면서도 골프채, 큰 헬스기구 등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런 물건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삶이, 쓰는 물건과 매치되지 않으면 뭔가 붕~ 뜨는 삶이 되고마는데요.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찾을 때 다른 부수적인 것에서 올 수 있는 실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