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2011. 8. 24. 오전 4: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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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묵시록 21,9-14; 요한 1,45-51

 우리처럼 성당에 매일 미사를 나오면, 또는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행사에서 간혹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뭐 좀 새로운 것이 없을까?’ 하고요. 몇 십 년 다니다보니 교회에서 하는 것들이 눈에 익숙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다 안다.’고 치부하는 자신을 보는데요. 예전 정약용이 지은 도산사숙록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정자와 주자 등 여러 선생님께서 제자의 물음을 답하실 때, 혹 경전의 뜻을 풀이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음미하여 마땅히 스스로 얻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끝까지 그 맛이 어떤 지는 말하지 않았다. 일찍이 맛보지 못한 자라면 비록 말해주어도 한결같이 알지 못한다. 뒷사람은 공자의 제자인 안연이 즐거워한 것이 무슨 일인지 모른다. 안연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반드시 안연이 누렸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꿀을 먹어본 자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꿀맛을 말해주려 해도 마침내 설명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그 깨달음이 투철해진다는 것인데요. 그 맛은 언어라는 제약을 갖고 있는 한정적인 표현으로는 다 말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오늘 나타나엘이라고 불리우는 바르톨로메오 사도축일입니다. 그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필립보가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하니까 바르톨로메오는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며 단정적인 의견을 내놓습니다. 뭔가를 단정 내릴 때, 그에게는 더 이상 초월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집니다. 이미 나는 알고 있다.’ 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어디 신앙이 그렇습니까? 내가 알지도 못한 경지가 있음을 비워두고, 그곳에 당신을 초대하는 사람만이 그 맛을 깨달을 수 있는데요. 이미 사도시대를 지나 이젠 교회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젠 아무도 직접 주님과 만나 대화를 직접 나누지 못합니다만, 여러 전승과 의미를 헤아리면서, 예전의 그들보다 안 보이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 더 행복한 지를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그러나 깨닫는 방향이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처럼 꼭 내가 알고 있는 방향에서만 오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그분이 오실 자리를 비워두어야 하겠습니다. 바르톨로메오가 놀랄 수 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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