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화요일. 콜로새서 2,6-15;루카 6,12-19
요사이 제가 음식 만드는 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쁜 그릇에 눈이 가기 시작했는데요. 저의 이런 사모님 같은 모습에 저 스스로도 웃음이 납니다만 확실히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그릇의 역할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볼 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의 성품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앞서 우선 그 사람의 겉에서 보여지는 외모, 목소리, 태도 등을 먼저 보면서 그것이 마음에 들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이 좋다고 평가를 내리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에도 한계가 있음을 봅니다.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덕경 마지막 장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는다. 선한 자는 달변이 아니고, 달변인 자는 선하지 않으며 지식이 있는 자는 박학하지 않고, 박학인 자는 지식이 없다.” 고요.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똑똑한 아이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런데 키우면서 아이의 말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 때 부모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애가 어디 잘못이 있나 싶어서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이 중요한 시대라 하지만 말만 잘하는 사람은 확실히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매끄럽게 생긴 그릇보다 오히려 투박하게 생긴 질그릇이 더 정감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저만의 시각은 아닐텐데요.
오늘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사람을 선별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요즘 얼마나 매끄러운 세상입니까? 자기 이득에 맞지 않으면 당장 관두고 나오는 세상이잖습니까?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시골 어머니같은 투박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 투박한 사랑은 제자들이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가셔서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데요. 우린 그런 사랑을 해야 합니다. 스마트함을 찾는 시대라지만 자기의 필요함만을 좇는 그런 스마트함이 아닌, 오히려 기도 속에서 제자를 찾는, 피땀 어린 간구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지금 사람들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