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일미사. 에제키엘 33,7-9;로마서 13,8-10; 마태오 18,15-20
오늘 복음에도 듣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라고요. 그래서 그런 지 누군가가 무언가를 잘못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를 꾸짖고 나무라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 사람은 진실과 대면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린 상대방의 내적상태와 현재 상태를 고려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그늘진 면을 보고, 자신과 자신이 지은 잘못 사이의 거리감을 확인하면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부드러운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그 부드러움이란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바로 영적으로 깨어있는 부드러운 상태입니다. 상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랑의 시간이, 그 사람을 성장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통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혼낼 때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나이 마흔 살 된 부모가 열 살 된 아이를 책망할 때, 부모는 아이의 현재 상태가 열 살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왜 마흔 살 된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느냐면서 혼내는 모습 말입니다. 본인의 시각에 가로막혀 아이는 언제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아이의 현재성을 망각하고 있는데요. 과연 자기가 자신을 혼낸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그래서 2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은 모두 이 한 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그러면 진정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화답송에 나옵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마라.” 우리에게 귀가 두 개가 있듯이, 기도하는 시간은 내가 말하는 시간을 줄여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듣는 시간은 곧 다시 말해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기다려 줄 때 나와 그 사람은 지금의 상처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점 없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내 삶의 유쾌하지 못한 부분을 대면하는 용기를 통해 주님의 따스한 사랑 안으로 다시금 돌아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내 주위에 진실을 마주할 만한 용기 없는 이들이 있다면, 우린 그가 회복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음을 모아 청하는’ 시간을 자주 가질 때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