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십자가 현양축일. 민수기 21,4-9;요한 3,13-17
신앙인이라면 절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젠 성물도 쥬얼리처럼 이쁘게 나오는 세상이 되면서 십자가가 사형도구의 틀이었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어떤 장식으로 생각한 나머지, 어떤 비신자는 신자인 친구에게 십자가 목걸이나 묵주를 목에 걸려고, 사 달라는 부탁까지 하고 있는 세상인데요. 예전에 어떤 신자분이 면담을 한다면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용인즉슨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애처로워 보여서 그러니까 좀 떼어내면 안되냐.’는 얘기였습니다.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인거죠. 기도는 해야겠는데, 달려있는 예수님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이니까, 어디 좀 치웠으면,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사실 십자가만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서 받아들이기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음을 우린 압니다. 그럼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뭔가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런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자기 자식을 통해서 보았을 때,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넌 나를 너무 닮았어.’ 라고요.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그 찡그린 표정을 통해 더 깊은 신앙으로 초대됩니다. 1독서에 “보잘 것 없는 양식에 진저리가 난다.” 며 불평을 하였을 때 구원을 주시려 뱀에 물린 이들이 다시 구리뱀을 보며 살아날 수 있음을 보면서, 지금의 이 고통을 통해 뭔가를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든 산고를 통해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어떻습니까? 그 아픔의 고통은 다 잊고 태어난 아이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배 아프며 태어난 아이이기에 더 사랑하며 보살피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듯 고통은 우리를 힘들게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릴 교육시킵니다. 그러기에 그 수난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 우릴 이끌어내셨기에 구원의 대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이 바라보는 십자가를 어떻게 여기십니까? 물론 불편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불편함이 아닙니다. 영광으로 이끌어주고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