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2011. 9. 18. 오전 11: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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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

 예전 평일 미사 후 한 젊은 친구가 찾아와 질문을 던집니다. 신부님 제가 학교에서 기도모임을 하는데요. 저만 천주교이고 나머지는 다 개신교 신자예요. 그런데 개신교 친구 중 하나가 물어오는 겁니다. 기도할 때 너희는 성호경을 긋는데 나도 할 수 있느냐?’ 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제게 물었던 것입니다. 기도를 하겠다는데, 교파가 다르다고 말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가르쳐주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걱정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안 전체가 개신교라는데 성호경을 그으면서 앞으로 다가오게 될 탄압에 대해서도 슬그머니 걱정된다는 말도 전했는데요. 그러다 얼마 후, 그 친구가 다시 찾아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미사포도 쓰고 싶다고요. 성경에는 미사포 쓰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앞서 다가올 탄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니까, 그 친구는 이렇게 반응했답니다. 그러면 뭐..교회를 바꿔야지 라고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는데요. 얼굴도 보지 못한 친구였지만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바꾸려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고 여겼는데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한국교회에는 성인 영세자들의 퍼센트가 높습니다. 우리 본당도 꾸준히 예비자들이 오십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발생합니다. 그분들이 비록 신자가 되었다 해도, 자신이 살아오면서 형성된 가치관은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니고 살아왔던 정치관, 경제관, 사회에 대한 신념과 지식이, 교회의 정신과 부딪힐 때,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반대로, 그동안 본인이 여겨왔던 가치관을 교회가 받아들여주길 바라면서, 때로는 강요하는 것도 보는데요. 헌데 우리들이 가진 정신과 가치관마저도, 참으로 복음적이어야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한국의 전통적 위계질서인 유교사상과 천주교의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사상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며 신앙을 지켜내셨기에 지금 우리가 편하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죽음마저 이기는 부활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확신보다 더 큰 확신을 가지셨기에 그런 생애를 보여주셨나 봅니다. 이처럼 더 너머의 것을 바라볼 줄 알 때, 지금 가진 한계의 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갇혀있는 벽을 봐야 하는데요. 자 보십시오. 예전보다 교인의 숫자는 많아졌지만, 신앙의 선조들보다는 약해진 것 같은 신앙심을요. 왜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그리 불안한가를 한 번 보십시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왔는데, 오히려 불안해진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여기서 개념정리를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평화란,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잠잠한 평화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런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저 삶의 죽은 상태입니다. 더 이상 발전도, 기대도 하지 않는, 잠잠한 상황에서 무슨 부활이 있고, 말씀하신 사랑의 활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죽은 상황을 원하신다면 오늘 2독서의 말씀인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밖에 어떤 것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는 말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신앙은 우리를 살려줍니다. 진정한 진리가 뭔지를 보게 해줍니다. 언론과 사회에서 말하는 그러한 감추고, 왜곡된, 입맛에 맞춘 진실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을 보여줍니다. 우린 그것을 보고, 체험했다면 이제 증언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살아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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