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토요일

2011. 10. 8. 오전 1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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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7주간 토요일. 요엘 4,12-21;루카 11,27-28

 많은 이들이 ‘부러움’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시큰둥하게 바라봅니다. 이른바 ‘민낯’ 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자기의 본래 모습을 껴안기보다는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고 싶어 분장을 하고 화장을 합니다. 여기서의 말씀은 그저 얼굴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와 자기의 천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원래 자신의 모습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남들에게 잘 보이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가 오디션 열풍을 낳고 있는가 봅니다. 실력은 별로 없지만 우선 세상에 자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른바 뜨고 보겠다는 심산은, 나중에 계속 받쳐줄 만한 실력이 없다면 오히려 더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는데요. 한 때 날리고 곧 세상에 잊혀지고 마는 여느 스타들의 괴로움처럼 말이지요.

 오늘 어떤 여인이 목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성모님을 부러워한다는 이야기겠지요. 허나 남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자신 안에 있는 면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실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더 불행한 사태라 하겠습니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스티브 잡스는 계속 창조적인 일을 하였는데 나머지는 그의 창조물이 ‘언제 나오나?’ 목 빼고 기다리면서 향유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면, 이는 문제이지 않을까요? 자기 안에 있는 보물을 보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장자 6장에 보면 이런 물음이 나옵니다. ‘기인(畸人)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요. 그러자 보통 사람하고 다르면서 하늘에 일치한 사람이다. 하고 답합니다. 쉽게 말해 이런 말이겠지요. 바오로가 ‘사람들이 보물로 여기는 것을 이제 쓰레기’로 여기듯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이나, ‘가난한 것이 오히려 복’이라 했듯이, 성인은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찮게 여긴다고요. 예수님은 여인의 부러움 섞인 말에도 좋아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십니다. 당신의 삶은 이미 성공과 패배를 떠난 삶이었으니까요.

 영화 씨네마 천국에 보면 늙은 영사기사인 알프레도는 어린 토토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고향을 떠나라’ 라고요. 아예 밀어냅니다. 그랬기에 토토는 멋진 감독이 되는데요. 가끔 나의 모습을 잘 보기 위해서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내가 보이니까요. 남의 부러움이나 만지작거리기보다 나의 보물이 뭔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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