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2011. 9. 30. 오전 6:50:04

글자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바룩서 1,15-22;루카 10,13-16

 간혹 어떤 분을 만나게 될 때 이런 말을 하는 분을 만납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힘을 자신이 가진 의지의 힘으로 조절하면서 살 수 있다고요. 이런 분을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본인이 세운 계획에 따라 실천하며 무리없이 행동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하느님과 멀어지는 사유가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말씀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그 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아마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생각을 더 앞세웠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이분은 번역한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 성경을 만드셨는데, 워낙 원문에 정확하고 충실할 뿐 아니라 대중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을 그린 그림에는 항상 해골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 사람 옆에 해골이 있을까?’ 를 본다면 사람은 곧 죽을 운명이며, 대신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랍니다. 사실 그의 삶은 앞서 말한데로 의지가 강하다는 사람과 맞서 싸운 삶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살던 당시 펠라지우스라는 열심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 없이도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럴 듯 하잖습니까? 그런데 예로니모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자기를 하느님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는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수록 하느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나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하느님이 오실 수 있는 자리는 그만큼 사라지고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의지가 있음은 분명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걸 주신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저 자기 잘난 맛으로 삽니다. 그러나 그 잘난 사람도 역시 죽음인 해골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유한함에서 무한함을 만날 수 있어야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