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일미사.이사야서 45,1-6;데살로니카1서 1,1-5;마태오 22,15-21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하느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러분께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 한 가지 드려볼까 합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세상입니까? 아니면 인간 소유의 세상입니까?’ 드린 질문이 너무 하잘 것 없어 보입니까? 한 번 답을 해보셨으면 하는데요. ‘이 세상은 하느님의 세상입니까? 아니면 인간 소유의 세상입니까?’ 그렇습니다. 배운 데로 답을 하자면 하느님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가끔 면담을 하다보면 이미 신자이신 남성 교우들에게서 이런 불평과 질문을 받곤 합니다. ‘교회가,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해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종교는 종교의 영역 안에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라고요. 물론 맞는 말씀 같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임하며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말씀은 어떨까요? 이 세상이 그저 인간이 창조한 세계라면 저도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하느님이 만드시고 다스리는 세상이라면서요? 그러기에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제 개인의 말이 아니라 그동안 주님이 해 오셨던, 교황님을 비롯하여 세계교회가 해 왔던 행동이기에 여러분께 알려드리는 차원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십계명 중에 제7계명이 무엇입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 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보면, ‘남의 것 뺏지 말라는 수준’ 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명은 그런 축소지향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말하고 있는 ‘남의 것’ 안에는 이미 하느님의 것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여러분께서는 이 세상이 하느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 때 하느님께서는 수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며 참된 세상을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사람처럼 ‘이 세상은 우리 것’ 이라면서 그 예언자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에 하느님은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하면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지만 이에 십자가에 매달아 버립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마치 이분법적 사고로 보입니다. 그리고 황제에게 세금 내라는 것처럼만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이런 말입니다. 황제는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결국 죽어 하느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정치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결국 하느님께 예속된 정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 결국 세상의 주인은 누구란 말입니까?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란 말이 됩니다. 결국 우린 그동안 세상의 것이 모두 인간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하느님의 것도 내 것처럼 써왔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7계명 앞에는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회교리’ 라는 것 들어보셨습니까? 지금부터 120년 전 레오 13세 교황님이 비참한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본인은 노동자 문제에 개입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면서 『새로운 사태』라는 회칙을 내놓으셨습니다. 왜 그럼 교황님은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지셨을까요? 태초에 하느님이 아담과 후손에게 땅을 맡기면서 인류의 공동자산을 맡기셨습니다. "니꺼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잘 돌보고, 노동을 통해 지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주인과 종의 개념이 도입되고,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면서 고용주와 노동자와의 문제 있는 계약에 대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19세기부터 소비재 생산을 위한 새로운 소비구조가 나오면서 국가와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 노동과 소유에 관한 새로운 형태의 문제가 복음정신과 마찰을 빚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쓸모의 대상으로만 여기면서 벌어졌던 여러 문제를 교회의 바른 시각을 가지고 보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하는 사회교리는 성찰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판단의 기준을 이끌어내며 행동의 방향을 일러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본당 교우 여러분!
교회가 그동안 정치나 사회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봐야 했지만 그냥 묵과하고 지나친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보고, 데모 하듯 들고 나서라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느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느님의 것으로 알고 그분께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221장 봉헌성가가 나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뭘 받아달라는 것입니까?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왜요? 처음부터 내 것은 없었으니까요. 그저 주님이 주신 것을 맡아놓고 살고 있었을 뿐이니까요. 이제껏 나는 당신께 무엇을 드리고 살고 있었습니까? 처음부터 내 것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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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1월 주교회의 의장이시며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회가 그동안 믿을 교리에 대해서는 강조해 왔지만 지킬 교리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고..교회의 수장인 주교님의 반성은 죽은 신앙을 살고 있는 우리게 큰 반향을 일으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