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목요일. 로마서 14,7-12;루카 15,1-10
저는 예비자들의 찰고시간 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났습니까?’ 입니다. 답은 이거죠.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났습니다.’ 그러면 재차 다시 물어봅니다. ‘그럼 영혼이 뭔가요?’ 이제부터 막히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답은 달달 외웠지, 깊은 영역까지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요. 여러분 영혼이 뭔가요? 교리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영혼은 인간의 영적원리이며 이로써 의식과 자유를 갖는다. 개별적이고 불사불멸하는 인간영혼은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다’고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답은 이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풀어 얘기를 해줍니다. ‘9시뉴스 보시죠? 그런데 그 안에는 나보다 배운 것도 많고, 돈도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만 범죄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릅니다. 그들이 그걸 과연 몰랐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끌려가고 있는데요. 영혼이 없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투덜거리는 가운데 예수님은 죄인들을 가까이 하시고 그들과 음식을 잡수십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은 사람들이 약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계시기에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들을 구해주시려고요. 그리고 사람들도 그 마음에 감동을 합니다. 하지만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율법학자들은 겉만 괜찮을 뿐 실은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그들의 약함을 안아주기보다는 그저 타박하기에 바쁩니다. ‘나는 너 같은 사람과 다르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들은 눈뜬 장님입니다. 정작 자신의 영혼이 어찌 되가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말합니다.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면 각자 말 못할 치부 하나씩은 갖고 있는 인생 아닙니까? 그러면서 누구에게 손가락질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평소 가슴에, 뜨끔뜨끔한 대바늘 하나씩 갖고 사는 이들이라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지 않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일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자기를 구하고 또 약한 사람들도 제대로 봐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