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토요일. 로마서 8,1-11;루카 13,1-9
요즘 중고등학생의 언어습관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도 지하철 등에서 우연찮게 듣다보면 참으로 민망스러운 경우를 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무시가 난무하고 너무나 저렴한 언어구사로 강론대에서 차마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이런 것을 학교가 알려주지도, 학원도 손대지 않기에 인성교육을 담당할 곳은 이제 주일학교 밖에 없는가 봅니다. 얼마 전 우리 본당 주일학교에서 ‘우리가 쓰는 욕’ 에 대해 교리를 했답니다. 워낙 시급한 현안이라 말이지요.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욕의 근원적 어원은 대다수가 성(性)적인 표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행위도 하지 않은 미성년자들이 그런 것을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었음을 교육시키면서 학생들 스스로도 놀랐다고 하던데요. 학생들은 어리기에 자기가 무슨 죄를 저지르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 있는 우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저지르는 죄가 무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어떻게 괴물처럼 만드는 지도 알고 있고요. 그러나 우린 봐야 합니다. 여기서 빠져 나오고자 하는 안간힘이 있는 지 말입니다. ‘끊고 돌아서는’ 습관이 필요한데요. 그저께 MBC 라디오 ‘박혜진이 만난 사람들’ 이란 프로에서 알콜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허근 신부님이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천주교 신문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길 지 모르지만, 경건한 성직자가 공영방송에 대고 자기의 허물을 나눈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기에서 빠져나와 치유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창피하다고 감추기만 한다면 결코 치유되었다고 볼 수 없으니 말이지요.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허물있는 체험담을 통해 비슷한 이들에게 빛을 주는 삶으로 탈바꿈 하는 삶을 살고 계신데요.
오늘 복음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지 3년이나 되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자 주인이 화를 납니다. 그러자 재배인이 말립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안 보이는 재배인들이 있습니다. 우릴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나마 버티며 산다고 하겠는데요.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란 말씀처럼, 나의 악습을 제대로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