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일. 지혜 7,22-8,1;루카 17,20-25
오늘은 수능 시험날이었습니다. 이런 큰 시험날이 되면 우리 학생들이 과연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루는가..하고 걱정이 됩니다. 물론 수능은 예전 시험보다는 과목간의 연관성을 갖고는 있습니다만 학생들의 내면에는 얼마나 깊은 것이 담겨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문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예전 조선시대 때 치뤘던 과거시험을 번역하다보면 나이는 분명 20대, 30대인데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면서 그 생각의 결을 잡지 못해 허둥지둥 헤맸대는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옛글을 읽다보면 과연 세상이 진보하긴 한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지요. 물론 옛날의 독서의 방법과 목적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지금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읽지만 예전에는 세상을 볼 줄 아는 식견을 위해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왜 사는가? 나는 누군가? 에 대해 해답을 제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학생은 문제를 풀기위해 읽습니다. 정보를 암기를 하지만 통찰로 연결되지는 않지요. 기계적인 데는 능숙하지만 창의적인 면에는 어쩔 줄 모릅니다. 예전에는 분명 책도 많지 않았는데 많지 않은 책 사이에 여러 구절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과거시험이라는 복잡한 현안의 문제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논리로 펴냅니다. 귀납법이니, 연역법이니 그런 교육도 받은 적 없는데 그야말로 단순 속에서 모든 경전의 핵심을 줄줄 꿰면서 마치 논문처럼 논리정연하면서 폭넓은 안목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오늘 지혜서의 말씀은 지혜 본연의 정신을 열거합니다. “지혜 안의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며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그저 몇 문제 풀 줄 아는 것보다 하나 속에서 모든 것을 꿰뚫는 이 지혜가 더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오늘은 대 레오 교황님 기념일입니다. 이 분은 단지 교회의 목자뿐 아니라 신학적, 사목적, 정치적인 여러 난제를 해결한 탁월한 분이었습니다. 단지 하나만 알고 있었다면 되지 않았겠지요. 우리도 지혜 안에서 통찰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짧은 안목에서 헤어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