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2011. 11. 10. 오후 2: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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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지혜서 13,1-9;루카 17,26-37

어제가 수능날이었습니다만 이제는 대학교만 들어갔다고 해서 공부하지 안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취직을 해도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공부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린 모두 신앙인이기 때문에 좀 어렵긴 하겠지만 하느님을 아는 공부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중세시대’ 라는 말을 들으면 우린 보통 암흑시대와 연관을 짓습니다.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등식이 성립된 계기는 르네상스를 최고라 여기는 무신론자들이 교과서를 만드는 편찬위원회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하느님, 교회의 생각을 그들은 무시하고 싶으니까요. 르네상스 이후 이성의 발전이 세상을 변화시키긴 했지만 한편으로 사람은 교만하게 되었는데요. 여기서 중세 철학자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신 존재 방식의 5가지’ 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운동상태의 의한 증명입니다. 이 세상은 계속 움직입니다. 축구공도 움직이고 사람의 심장도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를 움직이는 원인제공자가 있을텐데요. 홀로 움직이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이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신입니다. 둘째. 능동인의 의한 증명입니다. 모든 원인은 다른 원인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것도 스스로 원인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자기가 움직이려면 자신보다 앞서는 그 무언가가 도와줘야 합니다. 홀로 움직이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는 신입니다. 셋째. 필연성의 의한 증명입니다. 세상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멸하는 단계를 밟습니다. 사람도, 언어도 물건도 언젠가는 사라질 우연적 존재입니다. 만약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것이라면 과거부터 있었을 것이고 생성, 소멸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필연적인 그 무언가가 있어야 우연적인 것도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완전성에 의한 증명입니다. 세상을 보면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이 있습니다. 제품에도 그런 게 있지요.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완전한 것인데요. 그런 선한 것의 참여의 정도에 따라 더하고 덜한 정도가 나타납니다. 이 때 자체로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입니다. 다섯째. 목적론적 증명입니다. 세계의 움직임은 질서와 목표에 따라 움직입니다. 계절의 변화만 보더라도 정밀한 규칙성을 띱니다. 모든 생물은 사수에 의해 화살이 과녁을 향하듯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지성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이를 명령할 누군가가 있다면 이는 신이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었겠지만 오늘 독서에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고 나왔습니다. 그저 세상의 아름다움에 한 눈이 팔릴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든 원천자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우린 더 이상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독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공부는 그래서 진짜 잘해야 합니다. 제1원인, 세상의 원인 제공자를 향해 나가다보면 나만 아는 삶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자신의 외투자락을 잘라 내어줄 만큼 그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았던 모양입니다. 누가 꼭 가르쳐줘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사는 삶.. 그게 그리스도인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복음은 말합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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