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화요일. 마카베오하권6,18-31;루카 19,1-10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입니다. 원래 담임선생님이 계셨지만 그날따라 편찮으신 관계로 옆 반에 계신 선생님이 대신 몇 시간을 맡아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소문으로 대단히 무서운 분으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애들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제가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분에게 나아가 ‘선생님이 무서운 분 이시라면서요?’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3학년이 겁도 없지요?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한마디로 답하셨습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엄격한 거야’ ..그러고 보니 그분의 일처리나 가르치는 면에서는 군더더기가 없음을 발견했는데요. 저를 보고 많은 신자분들이 무서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것 같다. 인상을 쓰고 다닌다.. 뭐 저도 몇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되게 설렁설렁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자가 아닌, 누군가를 이끄는 자리에 있다보니 저 스스로, 오해를 받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아마 그것이 지금에 이르른 모양입니다.
항상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판단과 분별력입니다. 옆의 사람들은 쉽게, 남들처럼 살라고 종용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르지 않은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독서에 율법학자 엘아자르는 더럽혀진 삶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합니다. 옆에서는 이교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시킵니다. 그게 뭐 대수냐면서요. 하지만 그는 이야기 합니다.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엘 아자르가 별 미동이 없자 전까지 호의를 베풀던 이들이 오히려 악의를 품으며 그를 욕하기에 이릅니다. 고려말 충신이었던 정몽주에게 이방원은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보냅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하지만 정몽주는 '이 몸이 죽어죽어..' 하는 단심가로 응수하는데요. 쉽게 살려하고 대충 비켜나가려는 모습만으로 산다면, 그의 삶은 아무런 원칙도 발전도 없습니다. 언 발에 오줌누는, 대충 수습하면서 사는 삶은 그저 땜질인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캐오는 오늘 불의함을 씻으려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결단이요, 참된 회개의 자세입니다. 11월은 다시금 주님께 돌아가는 달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바로잡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