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간 화요일. 이사야 11,1-10; 루카 10,21-24
대림기간이 되면서 주일부터 고해성사를 보시는 분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연말이 되면서 다시 한 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과 삶의 정리가 필요한 우린데요. 그런데 고해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느끼는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자신을 잘 돌보면서 살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는 오늘 독서 말씀과 반대로 삽니다. 즉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하나 풀어가기 보다는 당장의 성질대로 해결하려고 드는데요. 무릇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컴퓨터나 자동차를 이용할 때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설명서를 보던가, 인터넷을 통하여 해결방법을 찾는 것은 잘하는 반면, 자신에 대한 문제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장자의 재유편에 보면 누군가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몸을 어떻게 다스려야 영원히 살 수 있냐?’ 고요. 그러자 도에 이르는 본질은 <고요하고 그윽한 것>이고 이르려는 극치는 <어둡고 말 없는 것> 이라 말합니다. 즉 내 안의 밑바닥까지 들어가보면서 나의 원래 모습과 해야 할 바가 보이면 육체가 올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바꿔 말하자면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려 갈 때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는 말씀처럼 삶의 힘이 되어주는데요. 이처럼 답은 하느님과 자기 안에 있는데 그저 많은 이들이 남의 말을 듣거나 서점에 가서 자기 처세술에 관한 책을 통해서 해결하려 듭니다. 허나 이런 것은 지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체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많이 안다고 똑똑한 사람이 아님을 우린 압니다. 뭔가 아는 이들이었다면 예전의 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대했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을 경배하러 목동들이 먼저 왔다는 사실과 똑똑한 이들이 오히려 교회를 핍박하고 등졌던 사태를 보더라도 지식에만 의존하면 오히려 몸을 망치는데요.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있습니까? 그게 우리가 할 일인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