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금요일.
저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남들은 이것에 대해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서울에서 살다보니 그저 불편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지방교구의 신부였다면 얘기는 좀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방에는 진짜 차가 없으니 불편하더군요. 매일 택시를 탈 수도 없고 말이지요. 예전 신학생 때나 일반인이었을 때는 ‘나도 차를 좀 살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사제서품을 받고나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이상하게도 8할 이상을 자리에 앉으면서 가는 은총을 받게되니, 꼭 구입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없어지던데요. 제가 차는 없지만 자가용을 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불법차선변경, 신호위반, 불법주차, 상대 운전자 욕하기, 사고났을 시 상대 잘못이라고 잡아떼기.. 등등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사제서품을 받은 지 7년 가량이 지났는데도 신기하게도 운전하면서 발생될 수 있는 죄에 대해서 고해성사를 통해 거의 듣지 못했다면 제가 이상한걸까요? 오히려 사람들이 ‘그건 죄가 아니라 당연한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 이 말은 단순히 성전을 말하는 것뿐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율법학자들이 화를 내지만 주님께서는 많이 안다는 율법학자가 남들보다 더 정결하고 깨끗하게 살 것을 당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 가 아니라 그 이상을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보면 ‘통회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 중에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란 표현이 나옵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마저 제공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것인데요. 이런 삶을 살기위해 평소 우린 뭘 해야 할까요?
자신을 성찰할 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첫째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하였는지? 둘째로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였는지? 셋째로 주님의 섭리와 성경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증진시켰는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만심과 야심으로 가득차서 죄의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과 확신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확신은 경건하고 진실한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요. 이 지식의 정도에 따라 영혼의 빛을 더 깊게 알아보게 됩니다. 사랑은 대개 지식과 함께 성장하고 지식의 깊이와 정도가 클수록 사랑은 더욱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성장한다는 것이지요.
오늘이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 지을 기회도 만들어졌다는 말도 됩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죄 지을 기회를 피할 수 있는 내가 된다는 말도 됩니다. 좀 더 주님처럼 살기위해 힘쓰시는 날 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