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2011. 12. 2. 오후 11: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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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신명기 10,8-9;고린토1서9,16-23;마르 16,15-20

 예수님의 수 많은 가르침 중에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을 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산상설교, 일명 진복팔단입니다. “행복하여라~” 하면서 시작되는 이 말씀은 사실 우리를 꽤나 불편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그래도 부자축에 낀다고 하겠습니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보지만, 다른 전국 국민에 비해 우선 사는 동네가 그렇고요. 뭔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여력도 있습니다. 게다가 받을 생각을 하고 꿔주기도 합니다. 다만 꾼돈을 받지 못해서 애간장을 태우는 게 문제지만요. 남보다 여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 사실인데요.

 오늘 2독서 말씀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이라고요. 우리가 자유롭게 살려면 우선 가진 게 적어야 합니다. 가진 게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잖습니까? 그럼 자유롭게 사신 예수님의 가난에 대해 한 번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가난은 가식이 아닌, 남들처럼 여건이 안 된다고 앓는 소리가 아닌, 진짜 궁핍이요, 태어날 때 조건도 못 갖춘 결핍이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런 그분이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씀처럼, 부자로 더 크게 살 수 있는 분이 스스로 자발적인 가난을 택하십니다. 왜일까요? 여러 가지로 풍부한 삶에 젖다보면 확고한 삶의 투신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내 옆에 뭐가 있으면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결정을 내리기 힘들 듯이 말입니다. 사실 이제껏 벌려놓고 가지게 된 사회-경제적인 혜택은 이미 우리에게 어떤 ‘지위’ 를 안겨주었습니다. 여전히 이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향유하고 더 가지려고 드는 한,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삶과는 다른, ‘특권을 누리는 사람’ 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린 없음의 비참함이, 오히려 나를 드높여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선교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입니다. 그냥 스페인에서 편하게 살면 되는 사람이, 일부러 중국, 일본까지 가서 힘든 삶을 자청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우리 스스로 찾을 때 성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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