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교육을 많이 받고 산 사람들이라고 우리 자신을 감히 치부할 지 모르지만 그 실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헛똑똑이 일 때가 참으로 많아 보입니다. 그 때 그때마다 판단을 잘 내리는 것 같지만 그 판단이라는 것도 너무 근시안적인 판단이라서 멀리를 내다보지 못하는 그런 경우를 참 많이 보잖습니까? 당장에는 좋아 보이지만 몇 년, 몇 십년을 내다보는 그런 선구안적인 자세가 우린 필요한데 그저 지금의 사정만 어떻게든 넘기려 허덕이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말씀도 이와 비슷합니다. 아들 둘에게 똑같이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지만 ‘싫습니다.’ 하고 생각을 바꾸고 일하러 간 아들과 ‘가겠습니다’ 말만 해놓고 따르지 않는 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만 놓고 볼 때 교회적으로 따질 때 순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1독서 처음에도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하고 말씀하시니까요. 하지만 전 그것보다 더 들어가서 대림절을 맞이하여 많이 나오는 성모님의 마음 속에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봅니다. 본인도 계획이 있을터인데, 예수님의 엄마가 되리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우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참된 당신의 뜻과 어떻게 부합되는 지 기다려보는 삶, 그게 정말 똑똑한 삶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루치아가 결혼을 안 해 주니까 약혼자는 악의를 품고 그녀를 고발하여 죽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를 파멸로 이끌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가지지 못할 바에는 부셔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말이지요. 자신이 생각했을 때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여길 지 모르지만 하지만 오히려 그녀를 더 크게, 더 높게 만듭니다. 그녀를 진정 생각해주었다면 그녀의 자유마저도 배려했을 때 약혼자인 자신도 더 나은 삶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우린 진정 똑똑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헛똑똑이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혹시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닐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