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 주간 화요일. 1사무 1,9-20;마르 1,21-28
며칠 전 어느 자매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든 지경에 있다면서 이렇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실 신부님께 면담 신청할까 말까에 대해, 몇 달을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고민을 했던 이유는 혹시라도 제 얘기를 듣고 신부님이 ‘그런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더 어렵거나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라는 말씀을 하실까 싶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라고요. 그 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여기서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그 말씀을 들으며 신부님들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현실이 참 안타까왔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자매님보다 상황이 더 힘든 사람도 있겠지요. 허나 그렇잖습니까? 남이 무슨 죽을 암에 걸린 게 크게 보이기보다는, 지금 가시 박힌 내 손이 더 아픈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평소 우리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 주고 있었나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오늘 독서에 한나는 흐느껴 울면서 기도를 합니다. 아이 하나만 갖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홀로 속으로 빌고 있었기에 사제 엘리는 그저 술 취한 사람으로만 봅니다. 그러면서 나무라지요.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이렇게 우린 다른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쳐다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너머에 무슨 사연이 있는 지 헤아려 보기 전에 그저 쓰~윽 보고 판단 내립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지요. 복음에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아마도 율법을 해석하면서 윤리․도덕 교과서처럼 말했 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왠지 현실적으로 따르기는 좀 벅찬 가르침 말이지요.
비록 엘리 사제가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을 지언정 그 말을 듣고 위로를 해주었고 예수님께서도 치유로 일으켜 주십니다. 내가 모르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지만 우리 주위에는 어렵고 힘든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우리 동네는 아무 일 없는 듯이 보일 뿐이지요.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