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목요일. 1사무 4,1-11;마르코 1,40-45
가족끼리 이런 경우가 발생합니다. 즉 쉽게 말해서 ‘가족’ 이라는 이름 하나로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바람 말입니다. 혈연으로 뭉쳤으니까, 같이 살고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살면서 그런 기대감이 꺾이는 때를 종종 발견됩니다. 게다가 가족이라지만, 친척이라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는 모습도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 어려울 때는 ‘가족’ 이라고 주장하지만, 별로 관계는 없는, 당연히 남 보다는 나은 관계지만, 그리 친밀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그런 어정쩡한 관계를 만나곤 하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을 하면서 자기네가 왜 그리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까? 고민을 한 끝에 주님의 궤를 모셔옵니다. 이제 사기는 하늘 끝까지 오릅니다. 금방 이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지는데요. 왜 이런 사태가 발생되었을까요? 그들은 하느님을 그저 믿고만 있었을 뿐, 대책이 없었던 것입니다. 막연히 ‘주님의 궤가 있으니 이젠 살겠지..’ 했을 뿐, 오늘은 안 나오지만 실상 이스라엘인들의 현실은 이방인의 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혹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듭니다. 성당에는 안 빠지고, 기도도 하긴 하지만 열절함이 없거나, 적극적으로 당신께 매달리기보다는 뭔가 모를 막연함 에 그치고 마는 것을 봅니다. 가족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피로 맺어졌다고 가족이 아닙니다. 그 관계가 갈라지고 찢어지는 모습이 그저 남의 집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냉랭한 가족의 모습을 우리가 경험하잖습니까? 이제 우린 내가 알고 있던 당연함과 막연함을 너머서 ‘서로를 원하고 있는 열렬한 마음이 과연 있는가?’ 를 봐야 하는데요.
복음의 나병 환자는 이렇게 예수님 앞에 섭니다.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의 열렬한 매달림이 그를 살립니다. 이제 가족관계도 신앙도 더 적극적으로 서로를 향해 사랑의 햇살을 비쳐주려고 할 때, 진정 바라는 것들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걸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