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목요일

2012. 1. 5. 오후 5: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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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전 목요일. 요한 13,11-21;요한 1,43-51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실제로는 사람이 느끼는 관심과 사랑의 흐름이라는 것을 죽이고 사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해 놓고요. 한 번 싫은 사람이 생기면, 그 생각이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일명 이런 사람은, 하느님 아래서는 죽은 사람들이지요.

 물론 이런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이유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시 나의 관심어린 사랑이 어떻게 흐르는 지, 어떻게 움직이는 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관심 어린 사랑은 마치 아이가 크듯이 그렇게 성장합니다. 예전에 아기였던 남의 아이를 몇 년 만에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아이를 보면서 우린 이렇게 얘기하지요? ‘얘가 이렇게 자랐어?’ 물론 본인이 해준 것은 하나도 없지요. 하지만 부모의 관심어린 사랑이 그 아이를 그렇게 성장시켜 놓았는데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한편으로 우린 쉽사리 단정 짓는 자세를 취하는데요.

 복음에 나타나엘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사실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자기가 아는 한 예언서에는 나자렛에 도드라지는 내용은 안 나오니까요. 하지만 안 나왔다 해서 그 고장이 죽은 고장은 아니지요. 예전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당했을 때 학생들을 가르치려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사는 곳이 흑산도 섬이니 교육상태는 안 좋았습니다. 그러자 정약용이 이런 편지를 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무얼 가르치겠냐고 비웃겠지만 훌륭한 스승이 단계에 따라 훈도하고 지도하면 서울의 훌륭한 스승 밑에서 자란 학생들 못지않게 쓸모있는 인재가 될 것입니다.” 라고요. 관심과 사랑을 거둘 때 사람은 죽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봐 줄 때 죽은 생명도 살아납니다. 우리도 그런 사랑을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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