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신학생들이 사제의 길로 잘 가는데 앞서 몇 번 정도 멈칫 거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첫 번째 멈칫거리는 순간이 착의식을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옷에서 교회의 옷이라 할 수 있는 수단을 입게 되면서 ‘내가 과연 자격이 있나? 그럴만한 사람인가?’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인데요. 사실 자격론만 따져본다면 우리 모두는 세례 받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말 없는 그분의 허락하심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는데요.
오늘 말씀에는 선택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는 말씀이 독서와 복음에 공통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럼 그 선택된 사람이 뭔가 권세도 부려보고, 세위도 떨칠만한데 오히려 말씀은 그 반대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왜 그럴까요? 있는 힘을 오히려 쓰지 않고 있을까요? 우린 알아야겠습니다. 진정 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보통에 힘 있다는 사람들은 자기 힘을 뽐내고 발산하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부리는 일도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것 투성이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보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곁에는 내 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던 적이 만들어집니다. 게다가 결말도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세례 받은 우리들이 진정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보다 우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헤아려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례는 새로운 삶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껏 삶의 죽음도 의미합니다. 물이 양면의 성격이 있잖습니까? 생명도 주지만 죽음도 가져다 주는. 이제 우린 진정 살기위해 이제까지 가졌던 습관, 버릇을 죽이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죽여갈 때, 참된 것만 남아 그것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그 작업을 해야겠습니다. 무엇이 나를 살리고 있었는지 알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