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금요일. 집회서 47,2-11;마르코 6,14-29
어제 동아일보에 이런 것이 실렸습니다. 종로구 익선동이라는 곳이 재개발에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점집이 꽤 있습니다. 점을 봐 준지 19년 정도 된 무당이 기자에게 이렇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평생 남의 미래를 점쳐 줬는데 이젠 나는 어디로 가지?” 하고요. 7성사 중에 신품성사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신부님이 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성사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을 위한 봉사의 성사입니다. 혼인성사도 배우자를 위한 성사이듯 신품성사도 사제 개인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성화를 도와주기 위한 성사입니다. 그러면 결국 하느님은 신자들과 사제 모두를 챙긴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오늘 독서 맨 처음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친교제물에서 굳기름을 따로 떼어놓듯” 이른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쓸 기름을 따로 떼어놨다가 제물로 바친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봉헌 때 낼 현금을 새 돈으로 바꿔 놓았다가 바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렇게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릴 정신이 있었는데, 오늘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하느님의 사람을 죽입니다. 헤로데는 분위기를 타는 인물이었나 봅니다. 춤 하나 보았다고 너무 기쁜 나머지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고 하니 말이지요. 헤로데는 왕이었기에 요한의 목소리가 바르다는 것을 알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둬놓기만 합니다. 하지만 헤로디아는 더 치밀하게 자기를 반대하던 세례자 요한을 ‘이 때다’ 하면서 죽이는데요. 그야말로 악한 영에 휩싸여서 자기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습니다.
우리는 영(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지요. 마찬가지로 그 보다 못하고 낮은 단계인 악령, 잡신도 존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하느님은 자신의 백성을 챙기는 한편 자신의 도구인 사제도 챙겨 잘 살게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잡신은 남의 점을 봐주긴 하였지만 그동안 자기를 모신 점쟁이라는 도구의 앞길은 허망하게 만드는데요. 이게 하느님과 악령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시는 하느님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습니까? 아는 만큼 더 믿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