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 토요일

2012. 2. 3. 오후 10:25:43

글자

연중 4 주간 토요일. 열왕상 3,4-13;마르 6,30-34

 여러분께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신앙적으로 어린아이 같다고 느끼십니까?’ 마치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이 잘 모른다, 무능력자다, 도움을 받아야 설 수 있다’ 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앙적으로 아직 갈 길이 먼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전공이 무엇 무엇이라고, 무슨 무슨 학력이라고 이력서에 써 놓아도 확실히 ‘아는 만큼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저도 신학을 전공했다지만 잘 모릅니다. 실제로 로마에서는 반년마다 각 교회관련의 새로운 논문이 쏟아져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우리나라는 정보가 늦기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려지지만, 신학 잡지에 기고되어야 그제야 교회의 현 실정을 알 수 있는데요.

 오늘 솔로몬은 이야기 합니다. “저는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도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정말 몰랐겠습니까? 아마도 그동안 소신껏, 능력껏, 노력을 다 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번번이 그 자리에서 넘어진다면, 노력을 덜 했다기 보다 자기 힘으로만 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젊은이들 중에도 청년활동을 잘 하다가 결혼하고 새로운 곳에 살림 차리고 나서 신앙이 시들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새로운 곳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회는 적응하는 곳이 아니라, 서서히 젖어드는 곳이지요. ‘적응한다’ 는 말 자체도 자기가 뭘 하겠다는 뜻입니다. 자기 힘으로 한다는 말은 바꿔 말해 한계가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오늘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겸손이 자기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낮아짐이 하느님과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 엄마가 깜빡 잊고 분유를 주지 않았을 때 아이입장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말도 못하고, 혼자서 분유도 탈 줄 모르고 배는 고픈데요. 그렇습니다. 울어야 합니다. 우리도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앞에 창피한 것은 없습니다. 더 엎드려서 빌 때, 문은 열릴 것입니다.

댓글 1

  • 2012년 2월 10일 오후 6:3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