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화요일. 열왕기 상 8,22-30;마르 7,1-13
우리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효(孝)에 대한 개념이 많이 퇴색되면서 신앙인의 현재 모습도 ‘하느님 아버지께 향하는 마음이 예전보다는 많이 퇴색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요. 자기 자식은 사랑하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가까운 어른은 공경하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어긋난 모정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합니다. 이젠 지난 이야기지만 우리 본당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제게 부탁을 해오셨는데요. 내용인즉슨 자기 아들이 이번에 개신교 재단 대학교의 교수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동안 외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하는 바람에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대신 예비자 교리는 몇 번 받은 적이 있으니 세례증명서를 한 통 떼어달라고 부탁해 온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증명서가 있으면 임용에 플러스 요인이 되기 때문이었지요. 그분의 말을 들으며 ‘아~ 이 분이 마음만 먹으면 더 한 것도 하시겠구나’ 하는 탄식이 들었는데요. 그래서 대신 주임신부님이 나서시어 예비자 교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소견만 작성해서 일처리를 마무리 지었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규정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하고요. 이 말씀을 들으며 내가 사랑을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른을 대하는 치사랑을 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사랑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직장이지요.그런데 우린 회사에서 직장상사에게 잘 하는 사람을 쉽사리 아부하는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치사랑은 상사를 윗사람으로 대우하고 배려하는 진심어린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한 번 들여다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참된 어버이로 공경할 때 신앙심도 자연히 생겨납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드리고 있기에 개인적인 욕심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 방식의 사랑이 나를 망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을 하는 자세는 서로를 살립니다.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