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2012. 1. 27. 오후 11: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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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2사무12,1-17;마르4,35-41

우리가 신앙을 갖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교리서에 의거한다면 ‘구원’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이를 좀 풀이하면 지금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나의 생각을 고수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떨쳐낼 것은 떨어버리고, 좀 더 올바른 주님의 관점에서 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고해성사 안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모습은 고해소에서 죄만 얘기하고 보속 받고 나가는 것이 보통의 모습이었다면 요즘의 분위기는 좀 달라졌습니다. 죄만 얘기하기보다는 사연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죄가 벌어진 이유를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이 교회와 주님의 마인드로 접근하면서 물어보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즉 고해자가 자기 변호를 하느라 바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지만 그 일은 어쩔 수 없었음을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즉 받아들임의 자세보다는 자기 안에 갇혀 있는데요.

오늘 독서에 나온 다윗 왕, 예수님, 그리고 기념일을 맞이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세 인물이 모두 받아들임의 자세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임금이 누추한 예언자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충분히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말을 듣자 다윗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라고 고백합니다. 복음에서는 풍랑 때문에 걱정만 하는 제자들의 목소리를 내치지 않으시고 그 소리를 들어 바람을 멎게 해 주십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많은 사상을 발표하였지만 그가 직접 창조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를 받아들이면서 신학과 철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린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확인받고 긍정받기보다는 앞서 해야 할 것은, 나의 목소리에만 잡혀 살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윗도 나탄 예언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상태를 인정했기에 비록 죄를 지었지만 그는 살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제자들이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음을 받아들이셨기에 그들을 살려주십니다. 아퀴나스 성인도 세상과 주님의 폭 넓은 세계를 받아들이고자 하였기에 지금 우리가 교리와 철학적인 면에서 혜택을 보고 있는데요. 보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는 면만 보려 한다면, 우린 그 안에서 맴돌 뿐입니다. 우린 더 많은 것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넓고 깊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2년 1월 28일 오전 11:53

    "받아들임의 자세"로 날마다 오늘 이 순간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