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열왕상 11,29-12,19;마르 7,31-37
요 며칠 간 예비자들의 중간면담이 있었습니다. 이제 교리를 반 정도 마친 상태에서 느낀 분위기는 어떤 지, 어려운 점은 없는 지, 교리에 대해 의문은 없는 지, 혼인문제는 없는 지 살펴보는 시간인데요. 그런데 어떤 자매가 대단히 불만인 많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신랑은 학생 때 세례를 받아서 그런 지 대단히 쉽게 받았다고 들었는데, 자기가 받고 있는 교리는 규율에 짜 맞춰져 있는 느낌에다가, 좋은 말 들으려 성당에 왔는데 뭘 하라고 하는 게 많아서 불만이 많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분은 종교란 곳을 그저 좋은 말 해주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사실 대다수의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매일 하는 미사는 항상 같아 보여서 천편일률적으로 보이고, 교회에서 하라는 계명은 자유로운 자기를 옥좨는 듯 여깁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며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면 병이 고쳐지기 위해서 무엇이 우선 열려야 합니까? 더 이상 자기 식대로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선수가 코치를 믿지 않으면 성적과 기량은 발전될 수 없습니다. 즉 자기가 가진 사고체계를 바꾸려 들지 않으면,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아무리 좋은 은총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태가 발생하는데요.
오늘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쌍둥이 동생이면서 평생을 관상하며 지낸 인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 아십니까? 자기가 그동안 가진 시선을 자기 자기로부터 내면으로 돌리는 것 이상으로 그 안에서 하느님을 볼 때 더 고요해지고 단순해질 수 있습니다. 이 고요는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알게 하고, 감각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질서 있고 정리해주며, 중요한 것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오게 해주고, 특별하지만 의미가 없던 것은 무해하고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게 해줍니다. 그렇기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면, 앞서 자매님처럼 그저 불만투성이의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인데요. 내가 어디가 닫혀있는 것 같습니까? 그걸 인정할 때 “에파타”는 다가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