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 금요일

2012. 2. 17. 오전 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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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6주간 금요일.

참으로 피하고 싶은 때에 쓰는 말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부담감’ 이란 표현이지요. 부담이 많다고 느껴지면 그 어느 것이라도 피하는 것이 상책일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부담이 있어야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란 전제를 붙인다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장은 해야겠는데, 하고 싶은데, 부담이 동반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성적이 잘 나오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만 하듯이, 연주를 잘 하려면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해야 하듯이, 이뻐지려면 가꾸는 정성이 필요하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시간과 돈이라는 비용의 부담은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의 관계의 향상을 위해 동반되는 부담도 이젠 받아들여야만 할 텐데요. 사회적으로 부담이라는 표현을 우린 십자가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주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기를 버려야 한다’ 는 표현이 두려운 나머지 대다수가 주저합니다. 마치 이런 경우이겠지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이란 성경과 성가책의 표현처럼, 다들 밀알 하나를 갖고 있지만 갖고 있던 밀알이 썩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 밀알이 그냥 그대로 남는 경우를 봅니다. 그렇게 썩지 않으니 싹도 나지 않고, 밀도 얻을 수 없지요. 마치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사야 하는데, 갖고 있는 돈이 없어지는 것이 싫어서 물건도 못 사고 손에 돈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이제 우린 무언가를 내놓아야 합니다. 다시 표현한다면 봉헌된 자세라 하겠습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린 십자가 영성이지만 십자가만 본다면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고통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십자가 뒤에 떠오르는 밝은 빛을 봐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부활의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볼 줄 아는 시각을 가질 때, 더 이상 십자가는 부담감이요, 아픔이며, 고통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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