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이사야 58,9-14;루카 5,27-32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많은 책을 남겼는데요. 그 중에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을 여러 개 써놓으며 당구첩경(當求捷徑)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뜻을 풀이하자면 ‘마땅히 지름길을 구하라’는 뜻인데요.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왕도는 있습니다.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학원만 보낸다고 성적 오르는 게 아니잖습니까? 여기서 지름길이란 말은 단지 요령을 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덜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바른 방법으로 공부하면 고생을 덜 하면서 성적이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빵만 구하면 빵도 얻지 못하지만 빵 이상의 것을 추구하면 빵은 저절로 얻어진다.’ 고요. 주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면 이익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장차 그 몸을 해치고, 의리를 추구하면 이익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롭게 된다.’ 고요. 마찬가지로 신앙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지름길은 존재합니다. 그 지름길이란 ‘나에게 있어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평소에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레위라는 세리와 식사를 하십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들이 투덜거립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그러자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저는 예수님이 단순하게 가난한 사람을 살피라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것만 챙기면 내 것도 제대로 못 챙기지만, 남을 살피고 구하려고 할 때,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에 대해, 그 사람을 통해 인식하게 되면서 나 자신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라는 존재에서 우선 그 시각을 ‘남’을 향할 때, 당장에는 손해보는 것처럼 여기지만, 그 선택이 남도 살리고 나 자신도 살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신앙에도 지름길, 첩경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헤매고 계십니까? 기초부터 다져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