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2012. 2. 24. 오전 11: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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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야 58,1-9;마태오 9,14-15

 예전 청년들과 있을 때 설문조사를 하면서 50명의 본당 청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제껏 자신이 해 온 연애는 어떤 방식이었나?’ 하고요. 보기를 내길 ① 헌신적인 사랑 ② 밀고 당기는 사랑 ③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는 사랑. 그런데 대다수가 3번이라고 답해놓았습니다. 즉 ‘네가 하는 것 봐서 나도 하겠다’ 는 식으로 응수한 것인데요.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지요. 서로 관심을 보이며 시작은 했지만, 전개과정에서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단식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제껏 어떤 단식을 해왔다는 말입니까? 교회에서는 규정적으로 1년의 두 번의 단식을 합니다. 벌써 행한 재의 수요일과 다가올 성 금요일입니다. 그런데 단식을 하면서 그 마음 상태는 어떠십니까? 흥미롭게도 평소 아침을 거르고 지내는 사람도 그 날만큼은 이상하게 배가 더 고픕니다. 하지 말라고 금하니까, 더 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지요.  사실 단식을 한다는 것은 몸으로나 마음으로도 손해지요. 그렇기에 여기에 단식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할 때라고 봅니다.
 
 말씀에서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하면서 말씀은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뭔가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시잖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즉 단식은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럼 자연스러운 단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사랑을 제대로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록 계획은 있어도 그 계획에 내가 휘둘리지 않는 사랑, 선물을 주었어도 내가 주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즉 내가 뭘 했다는 의식조차 없을 때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단식을 해도 했다는 표를 내지 않는, 무얼 바라는 단식이 아니어야 합니다. 난 이제껏 어떤 단식을 해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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