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2012. 2. 22. 오후 11: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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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신명기 30,15-29.루카 9,22-25

어제는 본당에 온 지 이틀 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동네 한 바퀴를 다녔습니다. 그저께 왔기 때문에 생소한 동네였지만, 이제는 제가 살 동네라 여기니 정감있게 다가왔는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본당 바로 앞에 무슨 무슨 선녀집이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신 앞에서 살아야 자기네가 믿는 작은 신도 만날 수 있다는 논리인가? 하고요.

오늘 말씀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느님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렇게 편안한 하느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독서를 보면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요르단을 건너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하시고, 복음에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하시니 이거 부담이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미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곳으로 찾아가 무언가를 바라고 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린 살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에 대해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점쟁이도 자기가 모시는 신에 대해선, 엄청난 공경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믿는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기가 처음에 옹알이를 하며 침 흘리며 뒹굴다가, 걷기 위해 무언가를 붙잡고 일어섭니다. 하지만 금방 일어서지 못합니다. 계속 철퍼덕 넘어집니다. 아마 어른이 되어 이런 과정을 겪어야 했다면 그 정도에서 포기하고, 죽을 때 까지 보행기 타거나, 엄마에게 업혀 다녔을 것입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하지만 넘어지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비록 함께 일어서서 걸어주지는 못하지만, 무릎에 힘이 들어가 일어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마음도 우리에게 짐을 지우 듯, 십자가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를 조바심과 기다림의 마음으로 바라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를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도 편치 않으실 것입니다. 허나 그래야 참되게 일어설 수 있기에 기운을 북돋아 주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도 감사해야겠습니다.

댓글 1

  • 2012년 2월 24일 오후 9:56

    신부님! 오늘 강론은 적어도 사제의 길이 참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리실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서 선물로 주셨구나...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