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화요일. 이사야 55,10-11; 마태오 6,7-15
오늘도 기회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은 밝아왔고 만나는 이웃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늘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자세로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말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관심이 가시는지요?. 대다수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 어떤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 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남에게 한다는 말이, 그저 자기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거나, 남을 생각해준다면서, 실은 남이 변하기를 바라는 자기의 속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벌써 많이 흘렀습니다만, 제가 학생시절 ‘주님의 기도’ 말마디가 바뀌면서 가톨릭 기도서가 재편이 되었습니다. 예전 기도서는 꽤나 두꺼웠었는데, 굉장히 얇아지면서 있던 기도문들이 많이 빠지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의아해 했습니다. 있던 기도문이 빠지니, 그럼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작은 기도문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마라.” 당신께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부탁에, 달랑 이 기도 하나만 가르쳐주신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잘한 여러 기도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마치 음악에서도 음표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쉴 때 확실히 쉬는 쉼표가 중요하고, 그림에도 꽉 차있는 것보다 여백이 중요하듯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히려 잘 안 보일 정도로 작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나는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어떤 소중한 것을 주었었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기회의 하루가 또 열렸습니다. 오늘도 많은 말과 행동을 하겠지요. 그럼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뜻은, 사람인 우리를 통하여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우린 당신의 뜻을 이루는 자녀들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