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금요일

2012. 3. 2. 오전 1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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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 금요일. 에제키엘 18,21-28;마태 5,20-26

  살다보면 미운 사람들이 생기곤 합니다. 괜히 준 것 없이 미운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데 이런 경우 그냥 밉다.라고 끝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더 심한 경우, 그가 잘못되어서 죽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갖는 경우가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우리는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고 가르치지만 아직 그 경지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신앙생활의 모범답안은 다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내 삶에 적용은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그 사람을 긍정하지 못해서 그런 마음을 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삶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탓에, 서로를 살리는 신앙을 택하기 보다는, 보기 싫은 사람이 없어져버리길, 관계가 재생 불가한 상태가 되는 것도 상관없다는 심리까지 진행된다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탓에 내가 오히려 파멸에 이르는 경우가 생겨도 괜찮겠습니까?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주님은 우리가 서로 화합하는 가운데 살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우린 서로 다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공평하시답니다. 그런데 그 공평함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가진 자본이 다 같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공평함은 우리가 당신에게서 받은 달란트가 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받은 색깔로 살다보면 남의 것을 시기, 질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즉 그 공평하심은 천편일률이 아니라 다양함 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모자이크 그림을 볼 때 가까이 보면 서로 색깔, 문양이 다르기에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지만, 멀리서 떨어져 보면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 알잖습니까? 마찬가지로 먼저 내가 받은 것에 대해 잘 살피고, 나에겐 없지만 그가 받은 것을 긍정할 때, 복음에도 나온 형제와 화해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에 이런 후렴이 나옵니다.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우리가 잘못했을 때마다 당신이 나타나셔서 시어머니처럼 물어댄다면 우린 못 견딜 것입니다. 그분의 침묵 안에서 배려와 헤아려 주심을 살필 때, 같이 살아간다는 신비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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