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일

2012. 3. 24. 오후 8:40:50

글자

사순 5주일미사. 예레미아 31,31-34;히브리 5,7-9; 요한 12,20-33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것을 더 알고자 분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영어를 공부하면 문법을 통해 그 문장이 몇 형식 문장인지를 알려고 하고, MBTI나 에니어그램 같은 성격유형 검사를 통해 사람을 알려고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완전히 알 수 있을까요? 그렇게 분석하기보다는 지식의 상대성과 한계를 알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마음의 눈을 길러갈 때 진정한 것을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이런 물음을 던져볼까 합니다. ‘혹시 신앙도 머리로 이해하려 드는 것은 아닙니까? ’하고요. 머리로 이해하려 들 때, 하느님은 너무 멀리 계시고, 그리스도는 과거의 인물일 뿐이며, 복음은 죽은 글자요, 교회는 수 많은 단체 중에 하나일 뿐인데요.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미 하느님의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 법이란 그저 십계명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속에 심어주신 법,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알아 듣는 법을 말합니다. 하지만 우린 쉽게 이를 저버립니다. 왜냐하면 남들처럼 안 하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으니까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을 먼저 보기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니까요. 그러면서 욕심은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무리하면서 뭔가를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좋았습니다. 꽤나 만족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계속 품에 안고 있습니까? 몇 년 동안 그것만 끼고 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언젠가부터 시들해져서 장롱 속에 쳐 박혀 있거나, 이젠 어디 있는 지조차 기억나지 않고, 또 새로운 신상품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데요. 왜 그렇겠습니까? 내가 허해서이지요. 내 마음이 허해서 그것만 가지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물건이 나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가지고픈 물건보다, 만족감보다 먼저 채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도 잘 해야 하는데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그 모든 것을 껴안을 수 있었던 계기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럼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들어 새로운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데이트 코치’ 란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분위기를 연출하면 되느냐를 알려주는 사람이나 커뮤니티를 말합니다. 그래서 애인 없는 젊은이들이 좋아라 하면서 그 방식대로 해 봅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작 자기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운 여러 기술을 시도하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지만, 정작 자신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그 시도가 허사가 되거나 그 사람이 싫증이 나면, 또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계속 상대만 바꾸는 행위를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한 때 자기를 치장하기에 바빴던 아가씨도 엄마가 되면, 화장도 안한 채 대충 머리에 핀 꽂고 시장 다니는 것이 엄마입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온통 관심이 아이와 가족에게 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가꿔왔던 여자가 자기를 내려놓고 가족에게 헌신할 때 그 가정은 살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머리로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그분처럼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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